후삼국시대 왕건의 정치적 후원지이며 조선시대에도 곡창지대로 국가 경제의 기반이 되었던 도시 중에 가장 부유하였던 나주이다.
당시의 나주목사면 현재 서울시장 수준의 경제력을 가졌을까 하는 궁금증을 가지고 나주목 관아에 도착하였다.
금성관이라는 객사보다 동헌에 더 관심이 있었지만 생각보다 관아의 건물이 많이 남아 있었다.
이순신의 수군 덕분에 임진왜란에서 호남이 지켜진 덕일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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