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국내)

동해안 일주 (금강산 건봉사)

OneMoreTime 2014. 8. 22. 14:22

 건봉사는 전국 4대사찰의 하나로 만해 한용운 선생의 건봉사급건봉사말사사적지에 의하면, 신라 법흥왕 7년 (서기 520년)에 아도화상이 원각사를 창건하였고, 그 후 도선국사가 중수한 뒤 서봉사라 하였으며, 고려 말엽 나옹화상이 중수하고 건봉사로 개명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신라 경덕왕 17년 (서기 578년) 발징화상이 중건하고 정신, 양순 등과 염불만일회를 열었는데, 이것이 염불만일회의 효시가 되었으며, 현존하는 "등공탑비"는 서기 782년 염불만일회에 참가했던 31인이 아미타불의 가피를 입어 극락왕생 하였다고 전하고 그 부도를 모신 것이다.

서기 1465년 세조임금이 건봉사를 원당으로 삼은 뒤, 어실각을 짓고, 전답과 친필 동참문을 하사 하였다고 전한다. 그 후 서기 1878년 4월 3일 큰 불로 인해 3,183칸이 전소되었으나, 여러차례 복원작업을 통하여 서기 1911년에 9개 말사를 거느린 31본산의 하나가 되었다.

건봉사는 임진왜란 때에 사명대사가 의승병을 기병한 호국도량이었으며, 당시 통도사에 있던 부처님 진신치아사리를 왜병이 일본으로 가져간 것을 사명대사가 시행하였다가 다시 찾아와 이곳에 봉안하였다.

또한 구한말인 서기 1906년 "봉명학원"을 설립하여 개화사상과 신문화를 받아들인 관동지망 교육의 도장이 되었으나, 그 후 일제에 의해 강제 폐교 되었다.

이 지역은 한국전쟁 중 휴전 직전까지 2년여에 걸쳐 아군 5,8,9사단 및 미군 제10군단과 공간군 5개사단이 16차례의 치열한 공방전을 벌인 건봉산 전투 전적지임, 이때 건봉사는 완전히 폐허가 되었으나, 서기 1994년부터 대웅전, 팔상전, 염불만일원, 종각, 사지 등이 각각 복원되었고, 지금도 사찰복원이 계속 이루어지고 있다. 한국전쟁 전 건봉사는 총 642칸과 보림암 등 124칸의 18개 부속암이 있었다.

 

 

 

 

 

건봉사 불이문을 지나 계속 올라가 적멸보궁으로 향한다.

 

 

 

 

 

 적멸보궁에 사리탑을 여러개 보아 왔지만 이렇게 정교한 모습이 보존되어 있는 것을 보지 못했다.

성덕대왕신종에 있는 불상모습이 양각되어 있고 너무나 선명하게 보관되어 있다.

 

 

 

 

 

 

폐허가된 건각 터를 다시 돌아 내려와 능파교를 건넌다.

 십 바라밀 석주가 서있고 그 아래에 설명서가 붙어 있다.

여유가 느껴지는 대웅전 뒷 동산에는 적멸보궁이 자리를 하여도 전혀 이상하지 않고 무방하게 느껴진다.

석가모니불 좌우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배치하고 친절히 명패를 붙여 놓았다.

 

대웅전을 나와 좌측으로 만일염불원을 찾아 일본에서 회수해 온 진신치아사리를 친견하였다.

 

맑은 물이 졸졸 흐르는 계곡을 따라 내려와 건봉사를 올려다 본다.

과거 금강산으로 가던 많은 승려와 선비들이 묵어가던 건봉사의 위용은 간데 없지만 심산유곡을 즐기던 풍류만은 남아 있는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