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국내)

군생활의 추억이 어린 파주 감악산

OneMoreTime 2019. 8. 26. 19:46

부모님의 고향은 파주이시고 나는 군생활을 25사단에서 하였다. 덕분에 귀에 익숙한 지명을 돌아다니며 운전병 생활을 하였기에 감악산의 설마치고개는 수도 없이 넘어 다녔다.

1993년도 쯤에는 회사 야유회로 감악산 등반을 하기도 하였고 2014년에는 새로 단장된 국군전적비를 아버지를 모시고 방문하기도 하였다.

이제 아버지는 시력도 잃으시고....

같이 목욕을 하면서 야윈 모습을 보노라니 과거에 좀더 잘해드리지 못한게 아쉬움으로 남는다.

찹찹한 심정으로 아버님께서 설인귀 관련 설화를 들려 주신 감악산을 오른다.

설마터널이 뚫리면서 교통이 편리해 졌고 신 트렌드 중에 하나인 구름다리가 놓이면서 많은 인파가 찾는 곳이 되었다.

 

 

 

 

구름다리를 건너면 운계폭포가 있다. 수량이 부족하여 폭포의 운치는 없지만 바위 절벽을 사이에 두고 쏟아지는 폭포를 상상해 본다.

 

 

조금더 오르면 법륜사라는 사찰이 있다. 감악산 등반객과 구름다리 방문자가 많아지면서 호황을 누리는지 새로이 단장된 곳이 많았다.

 

 

 

 

자갈밭으로 이루어진 등산로를 걷는다. 발목에 상당한 무리가 있어 묵은밭을 지나서는 돌탐, 장군봉, 임꺽정봉을 향하여 우회전을 한다. 

 

약간은 가파른 경사길이기는 하지만 등산의 묘미를 느끼기에 충분한 등산로가 펼쳐지고 군데군데 바위와 암봉의 향연이 펼쳐진다.

 

 

 

 

 

 

 

 

 

 

 

 

 

 

 

 

 

 

 

 

 

 

암벽과 소나무의 정취를 만끽하며 오르다 보니 장군봉에 도착하였다. 건너편에 임꺽정봉이 깍아지른 암벽의 자태를 뽐내고 있고 죄측으로는 감악산 정상이 송신탑아래에 자리를 하고 있다.

남쪽으로는 신암저수지와 양주지역이 북쪽으로는 백학지역이 조망된다.

 

 

아쉽게도 임꺽정봉은 출입금지가 되어 있다. 곧바로 감악산 정상을 향한다.

 

실로 오랜만에 감악산 정상에 다시 섰다. 송신탑이 없던 시절에 올랐을 때보다 좀 더 쉬웠던 것 같다.

과거에는 영국군 전적비에서 출발하여 까치봉을 거쳐 감악산에올랐었고 마사토의 미끄러움을 한없이 경험하였던 기억이 새롭다.

 

 

 

감악산 정상 아래의 정자에서 굽이굽이 흐르는 임진강과 북녘땅을 바라본다. 멀리 개성의 송악산이 보인다.

 

하산코스로 잡은 파리봉과 적성이 내려다 보인다.

다소 거친 모래알 형태의 마사토가 많은 구간이니 조심스럽게 내려가며, 바위와 소나무 그리고 야생화를 만끽한다.

 

 

 

 

 

 

 

주차장으로 내려오면서 박스거더 교량에 접근로가 추가 설치된 것을 보았다.

성수대교 붕괴의 교훈으로 얻은 교량의 점검로 설치가 강화되어 미끄럼베어링이 있는 슈부분의 마모를 검사할수 있는 플랫폼이 전국적으로 설치되었다. 그런데 이곳은 중간에도 추가로 설치한 곳이 있었다. 아마도 교량의 쳐짐을 겅사하기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였다.

성수대교는 1979년 10월 개통되어 1994년 10월 교각 상판이 주저앉은 사고가 발생하였다. 당시 내가 근무하는 동아건설의 책임으로 온통 난리가 났지만 사실 한강의 다리는 모두 공법을 달리하여 설계 및 설치를 하는 시기였고 성수대교는 국내 유일의 트러스교였다.

지금 보이는 다리와 같이 판으로 된 받침이 베어링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고 힌지라고하는 핀이 움직이며 충격을 완화하여야 하는데 당시에는 하부에 내려가 힌지에 그리스를 주입하지도 않았다.

가정의 문짝에도 WD-40이라는 윤활유를 주입하는 세상에, 유지관리는 하나도 하지 않고 서울 동북쪽의 모든 화물차량은 설계하중 30여톤의 성수대교를 통하여 통행이 가능하였으며. 서울 서북쪽으로는 성산대교가 유일한 대형화물차량의 통행가능 다리였다.

당시에 과적이 일반화 되어있어 차량무게를 합하여 80톤가량의 덤프트럭들이 수시로 이 다리를 지나 다녔다.

지금이라도 안전을 위하여 점검로를 만들어 놓았으니 그나마 다행이고, 주기적으로 점검 및 유지관리를 잘 하여 사고의 반복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게 된 건만으로 만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