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령관문과 정암루, 솥바위
의령을 가기 위하여 군북IC에서 남강을 건너자마자 홍의장군 동상과 성벽이 보이고 자그마한 정자도 보였다. 급하게 차선을 변경하여 좁은 길을 돌아가니 그곳은 정암루라는 정자와 솥바위가 자리를 하고 있다.
남강은 유유히 흐르고 홍의장군 곽재우의 명성은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지만 의령은 교통이 애매한 약간은 낙후된 고장이라 할 수있다.
그동안에는 황매산을 가는 길에 스쳐 지나기만 하였지만 오늘은 한우산, 자굴산 그리고 일붕사를 방문하기 위하여 의령에 왔다.
의령9경은 아래와 같다.
제1경 충익사는 높다랗게 솟은 의병탑과 내외삼문, 사당, 충의각, 기념관 등 9동의 건물이 있으며 기념관에는 곽재우장군의 기마도와 의병창의도 등 5점의 기록화와 망우정이 복원되어 있다. 경내에는 도기념물 83호로 지정된 모과나무가 있다.
제2경 자굴산은 봄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철쭉과 잡목립이 무성해 계곡마다 절승의 경관이 즐비한 곳이다. 자굴산 정상에 서면 의령군이 한눈에 들어온다, 의령은 예로부터 인물의 고장이라 알려져 있는데 자굴산의 정기를 받아 지금도 많은 인물이 나오고 있다.
제3경 봉황대는 구릉의 모양이 봉황이 날개를 단 모양 같다고 조선후기 김해부사 정현석이 봉황대라 이름지었다고 전하며 산 정상부 암벽에는 부정현석이 봉황대라고 쓴 각자가 새겨져 있다. 가락국 숙왕때 출여의 낭자와 황세장군에 관한 전설이 남아있고 여기에 관련된 여의각이 세워져 있다.
제4경 벽계관광지 지역에는 벽계저수지와 봉황대, 벽계계곡 등이 있는 곳으로 이 각각이 가지고 있는 자연 경관이 빼어나 의령군에서 조성하여 관광명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제5경 정암루는 의령과 함안의 경계 사이를 흐르는 남강의 도선장을 이르는 명칭이었던 정암진은 주위경관이 아름답고 시원하여 옛부터 인근의 시인 묵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던 곳이다. 아래 남강물속에는 흡사 솥모양을 닮은 솥바위, 즉 정암이 있다. 또한 정암루에 올라 유유히 흐르는 강을 바라보며 선일들의 운치를 한껏 되살려 볼 수 있다.
의령관문은 서부경남과 북부 호남을 연결하는 의령관문은 남강변의 자연경관과 함께 조형미가 아름답지만 밤이면 조명불빛으로 자태가 더욱 화려하게 빛나고 있으며, 임진왜란때 정암진전투로 유명한 전적지에 새워져 역사적 의미도 크다.
제6경 탑바위는 약 20톤 가량의 커다란 바위가 아랫부분을 받치고 있으며 그 위로 높이 8m가량의 작은 바위가 천연탑층을 이루고 있으니, 저연의 조화치고도 매우 신기한 현상이다. 탑바위 아래는 남강의 맑은 물이 흐르고 강건너편은 끝없이 넓은 들판이있다.
제7경 수도사는 신라때의 고찰로 절의 경내에는 대웅전 대신 극락전이 있으며 그 뒤에 칠성각과 동서 양편에 요사채가 있다. 수도사는 임진왜란때 한번 소실된 적은 있으나 사명대사 유정이 다시 이절을 중건하였다고 한다.
제8경 백산 안희재 선생 생가는 안채와 집사실의 2동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목조와가 및 초가집으로 되어 있다. 안채는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구조로 이들 가옥은 조선후기 민가 건축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제9경 호암 이병철 선생 생가는 대대로 유학을 숭상하는 선비의 집안에서 태어난 이병철 선생은 강직한 가풍속에서 조부인 문산 이흥석공이 세운 서당 문산정에 다니며 한학을 공부했고 지수보통학교에 편입, 서울의 수송보통학교로 옮겨 수학했다. 그후 신학문을 공부하였으며 1926년 사육신의 한 사람인 박팽년의 후손인 박두을 여사와 결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