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보리암
2008년 2월 13일
어머니의 제사를 마치고 어머니의 정취를 따라 내려온 남해의 보리암.
이곳에서 어머니는 자식의 행복을 기원했을 것이라 생각하니
마음 한편이 무겁다.
평소 말씀하신대로 가장 행복하였을 때 갑자기 우리 곁을 떠나신 어머니
그동안 여행다녀 온 곳을 꼬박꼬박 기록해 놓으셨고, 평소에 같이 여행한번
하지 못한게 안타까워 어머니의 발자취라도 둘러볼 요량으로 우리 부부가
일심으로 선택한 곳이 바로 남해의 보리암이다.
아주 오래전 그러니까 1982년도에 시골버스를 타고 남해에 왔었고 상주해수욕장에서
남해의 보리암을 먼발치에서 보고는 읍내에서 권투경기 중계를 본 기억이
가물가물하게 떠오른다.
그저 여행이 좋아 아무 버스나 닥치는대로 타고 떠나던 그때는 노량대교를 본 것만으로도
남해 여행에 만족하였고 충무공 유적은 덤으로 본 것으로 생각하였었지..
날씨는 쌀쌀했다.
어머니도 저 사람들 같이 관음보살에 수없는 기원을 올리곤 하셨는데...
멀리 남해의 다도해를 바라본다.
안개속에 묻혀있는 수많은 섬과 같이 마음의 평화가 잦아든다.
엄마가 저 하늘속에서 날 보고 있는것 같았다.
상주 해수욕장에 내려 왔다.
멀리 금산의 부드러운 능선이 보이고 바윗자락에 자리잡은 보리암이 보인다.
여길 내려다 보고 있을 관음보살께 다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마나님은 차에서 조용한 마찰음을 내며 숙면을 취하고 있다.
마음이 평온하게 잠들어 있어 겨울바다를 만끽하고 길을 떠난다.
도로가에 덩그러니 자리잡은 국도 3호선 출발지가 표석하나에 표시되어 있다.
한참을 돌아 여기에 와서 출발점의 표석을보니 마음에 감회가 밀려왔다.
차를 돌려 한장의 사진에 그 마음을 담았것만
몇년이 흘러 이 글을 쓰는 지금은 그게 뭐였는지 기억 저편에 있다.
어머니는 원래 계시던 곳으로 되돌아 가셨다.
늘 말씀하시던 그곳에서 다시 가셨으므로 아쉽기는 하지만 슬프지 않았고
지금도 가끔 그 목소리가 그립기는 하지만 미련이 없다.
지금까지도 가장 아쉬운 것은 해외 출국 인사를 드리고 나오는 길에 엘리베이터까지
따라나와서 내 손을 꼭잡고 가지 말라시던 어머니를 그때 꼬옥 안아 드리지
못한 것이며, 이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아부다비에 생활하는 내내 머리속에
떠나질 읺았고,
귀국 즈음에서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뤘고, 장례예절 등을 배우기도 하였는데...
내가 귀국했다는 소식에 안심을 하시고 편안하게 눈을 감으셨던 것 같아
그나마 다행이었고,
사실 1월말에 귀국할 수 있었으나 같이 귀국하는 것으로 하여 2월 5일 귀국하게 된 것인데
그때 귀국 직전에 왜그리도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였던 것인지...
미리 이별연습을 하였던 것 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차분하고 엄숙한 마음으로 어머니의 발자취를 느끼며 남해를 떠났다.